
넷플릭스 신작 〈정점〉이 2026년 4월 24일 공개됐습니다. 샬리즈 테론 주연에 〈에베레스트〉의 발타사르 코르마쿠르 감독 작품이라는 조합, 저는 공개 첫 주말에 조명을 끄고 헤드폰까지 꼈습니다. 생존 스릴러를 꽤 좋아하는 편이라 기대치가 높았던 영화인데, 다 보고 나서 솔직히 말씀드리면 별 다섯 개 만점에 2.5점이었습니다.
수직 절벽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영화의 첫 장면은 노르웨이의 트롤 월입니다. 유럽에서 가장 높은 수직 암벽으로 해발 약 1,100미터에 달하는 절벽이라고 합니다. 제가 고소공포증이 있는 편이라 그 높이감이 화면으로도 충분히 느껴졌고, 손바닥에 땀이 맺힐 정도로 몰입했습니다.
부부 등반가인 사샤와 토미는 수직 암벽에 매달아 고정한 접이식 침대 같은 장비 위에서 깨어납니다. 두 사람이 그 위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보는 입장에서 내내 조마조마했습니다. 그 긴장감만큼은 영화 전체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구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첫 번째 아쉬움이 생겼습니다. 두 사람의 관계가 충분히 쌓이기도 전에 토미가 추락해 버립니다. 감정적인 충격보다 당황스러움이 먼저 왔습니다. 사샤의 트라우마와 죄책감이 영화 전체의 동력이 되어야 하는 구조인데, 그 출발점이 되는 사건이 이렇게 빠르게 처리되니 이후 사샤의 감정선에 온전히 따라가기가 어려웠습니다.
〈디센트〉라는 영화와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영화에서도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여성이 남편과 아이를 잃은 뒤 생존자의 죄책감을 안고 동굴 탐험에 나섭니다. 그런데 〈디센트〉는 지하 깊숙한 공간을 헤매는 이미지 자체에 주인공의 심리가 고스란히 투영됩니다. 같은 설정이라도 〈정점〉은 그 밀도가 훨씬 얕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남자 vs 곰' 논쟁이 떠오른 영화
〈정점〉의 플롯은 간결합니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 사이코패스 남자와 여자 단둘이 남겨진다면 어떻게 될까, 라는 질문이 이 영화의 출발점입니다. 그런데 이 설정이 2024년 소셜 미디어에서 크게 바이럴됐던 '남자 vs 곰' 논쟁과 맞닿아 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그 논쟁은 한 틱토커가 던진 질문에서 비롯됐습니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마주친다면 낯선 남자와 곰 중 어느 쪽이 더 낫냐"는 질문이었는데, 대다수 여성이 곰을 선택했습니다. 북미 그리즐리 베어는 어깨 높이만 1.5미터에 달하고 무차별적인 공격성으로 잘 알려진 맹수입니다. 그럼에도 곰을 선택한 이유로 가장 많이 언급된 것은, 곰과의 조우에서 최악의 결과는 죽음이지만 낯선 남자와의 조우에서는 그보다 끔찍한 결과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여러분에게는 어떻게 들리십니까?
〈정점〉은 이 공포를 영화적으로 구현합니다. 타론 에저튼이 연기한 벤은 마을 상점에서는 멀쩡한 현지인으로 보입니다. 사샤가 불량배들에게 치근거림을 당할 때 나타나 상황을 진정시키고, 시크릿 스팟까지 알려주는 친절한 남자로 등장합니다. 그러나 숲에 들어서는 순간, 그는 인간을 사냥하는 최상위 포식자로 돌변합니다. 영화 제목 '에이펙스'에 이 의미가 담겨 있다는 점이, 단순한 제목 그 이상으로 읽히는 지점입니다.
낯선 남성으로 인한 여성 대상 폭력 범죄의 상당수가 피해자가 상대를 신뢰하게 된 이후에 발생한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벤이 처음부터 위협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설정은 그래서 더 섬뜩하게 느껴집니다.
두 배우 덕분에 끝까지 봤습니다
이 영화를 끝까지 보게 만드는 힘은 결국 두 배우입니다. 샬리즈 테론은 맨손으로 절벽을 오르고, 물에 뛰어들고, 숲을 질주합니다. 카메라가 마치 그녀의 몸에 결속된 것처럼 따라붙는 촬영 방식은 〈본〉 시리즈에서 볼 수 있던 핸드헬드 기법과 유사합니다. 다소 작위적으로 느껴지는 순간도 있지만, 샬리즈 테론의 단련된 피지컬을 보여주는 데는 꽤 효과적이었습니다.
그녀를 섹시한 여전사 전문 배우라고만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몬스터〉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배우라는 사실을 먼저 떠올립니다. 〈정점〉에서 최고의 내면 연기를 보여줬다고 할 수는 없지만, 사샤라는 캐릭터의 피지컬적 설득력만큼은 그녀 외에 대안을 찾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타론 에저튼은 영국 출신이지만 호주 시골 토박이 사이코패스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냈습니다. 〈킹스맨〉의 세련된 이미지, 〈로켓맨〉에서의 엘튼 존과는 전혀 다른 캐릭터입니다. 제가 호주 영어 액센트에 정통한 편은 아니지만, 영화 내내 그가 영국 배우라는 사실을 잊었을 정도였습니다. 호주 오지 출신 연쇄살인마가 빌런으로 등장하는 영화는 영화사를 통틀어 〈정점〉이 거의 처음이 아닐까 싶은데, 그만큼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캐릭터를 만들어냈습니다.
두 배우가 화면을 채우는 구간은 이 영화가 추천받을 만한 가장 강력한 이유입니다. 주요 등장인물이 사실상 둘뿐인데도 팽팽한 긴장감이 유지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후반부에서 페이스가 무너졌습니다
그렇다면 왜 저는 2.5점을 줬을까요?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후반부의 호흡 조절 실패입니다. 사샤가 반격에 성공해 벤의 다리를 부숴버리는 장면까지는 클라이맥스로 치닫는 긴장감이 잘 살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직후부터 영화가 갑자기 늘어지기 시작합니다.
다친 벤을 끌고 이어지는 후반부 장면들은 긴장감을 재점화하지 못했고, 솔직히 그 구간에서 저도 슬슬 핸드폰에 손이 갔습니다. 96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느낌이 들었다면, 페이스 조절이 그만큼 실패했다는 뜻입니다. 좋은 재료들을 가지고도 마지막 불 조절에서 실수한 요리처럼 느껴졌습니다.
또 하나 걸렸던 부분은 벤이 시신으로 육포를 만드는 장면입니다. 식인 모티프는 영화 전체 톤이 혐오스럽고 기괴한 이미지로 공포를 유발하는 그로테스크 호러 쪽으로 기울어 있을 때 힘을 발휘합니다. 그런데 〈정점〉의 결은 분명 사이코패스 사냥꾼 게임에 가까운 스릴러였지, 그쪽 방향의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 장면이 영화 안에서 완전히 따로 노는 느낌이었고, '굳이 왜 넣었을까'라는 생각만 남았습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아쉬웠던 점을 정리해 보면 이렇습니다. 우선 토미의 추락 이전에 부부의 관계를 쌓는 장면이 5분만 더 있었어도 사샤의 감정선에 따라가기 훨씬 수월했을 겁니다. 또 사샤가 죄책감과 상실감을 안고 호주로 건너가는 심리적 과도기를 보여줬다면 캐릭터의 깊이가 한층 살아났을 겁니다. 무엇보다 후반부 클라이맥스 이후 호흡을 빠르게 끊어냈어야 했는데, 그 부분의 늘어짐이 영화 전체의 인상을 많이 갉아먹었습니다.
저는 정점에 별점 5점 만점에 2.5점을 드리고 싶습니다. 좋은 재료가 가득한데 마지막 30분에서 호흡 조절을 놓친 영화라는 인상이 가장 짙게 남았습니다. 그래도 샬리즈 테론과 타론 에저튼의 두 사람이 화면을 채우는 구간만큼은 충분히 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96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이라 가볍게 틀어보기엔 나쁘지 않은 선택이지만, 생존 스릴러의 정점을 기대하셨다면 기대치를 살짝 낮추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낯선 남자와 곰' 중에 어느 쪽을 선택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