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작비 5,200만 달러로 3억 5,200만 달러를 벌어들인 영화. 처음 이 수치를 접했을 때 저의 심정은 "그래서 얼마나 대단한 실화냐"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서, 그리고 그 뒤에 실제 기록들을 하나씩 찾아보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이 영화의 진짜 볼거리는 범죄가 아니라, 그 범죄가 얼마나 많은 부분을 부풀렸냐는 것이었습니다.
스필버그가 선택한 온도, 범죄물이 아닌 성장기
이 영화가 개봉할 때 천재 사기꾼의 이야기라기에 저는 날카롭고 긴장감 넘치는 범죄 스릴러를 기대하고 극장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오프닝 크레딧의 애니메이션 타이틀 시퀀스가 흘러나오는 순간부터 예상과 전혀 다른 감정이 밀려왔습니다. 세련되고 유쾌했습니다. 그리고 그 온도는 영화 내내 유지됩니다.
스필버그 감독은 이 소재를 심판의 언어가 아닌 이해의 언어로 풀어냈습니다. 영화의 주인공 프랭크 애버그네일이 수많은 거짓 신분을 만들어내는 이유가 단순한 탐욕이 아닌 것으로 그려집니다. 이혼으로 무너진 가정, 아빠와 엄마 사이에서 어떤 선택도 하지 못한 소년이 세상 어딘가에 자신의 자리를 찾으려는 몸부림으로 읽힙니다.
흥미로운 것은, 극 중에서 프랭크의 부모가 이혼하고 엄마가 아빠의 절친한 친구와 재혼하는 스토리가 사실 프랭크 본인의 과거보다 스필버그 감독 자신의 실제 경험에 더 가깝다는 점입니다. 감독이 자신의 개인사를 소재에 투영한 셈이고, 그 덕분에 영화 전반에 걸쳐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유독 따뜻하고 진하게 살아납니다. 스필버그는 E.T.부터 인디아나 존스, 링컨까지 여러 작품에서 이 주제를 반복적으로 다뤄온 감독이기도 합니다. 그 반복이 이 영화에서 가장 잘 어울렸다고 생각합니다.
실화 기반 영화의 특성상 서사가 에피소드 나열 방식으로 전개되는 한계도 분명히 있습니다. 기승전결의 극적 곡선이 뚜렷하지 않고 장면들이 흥미롭게 이어지다가 끝나는 느낌을 받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저도 첫 관람에서는 그 점이 조금 아쉬웠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보고 나서는 그게 오히려 이 영화의 솔직함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 속 디테일, 그리고 실제 기록이 말하는 것
일반적으로 《캐치 미 이프 유 캔》은 실화를 80% 충실하게 재현한 영화로 알려져 있습니다. 프랭크 애버그네일 본인이 인터뷰에서 직접 그렇게 말했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실제 기록들을 찾아보고 나서는 그 주장 자체를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 안에 숨겨진 디테일들은 꽤 정교합니다. 프랭크가 팬아메리칸 항공, 당시 미국 최고의 항공사 유니폼을 입고 길을 걷는 장면 배경에 페덱스 트럭이 잠깐 등장하는데, 이 부분은 명백한 시대 고증 오류입니다. 페덱스는 1971년에 설립되었고 해당 로고는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후에 바뀐 디자인이라 두 가지 오류가 동시에 발생했습니다. 또 프랭크가 수표를 위조하는 장면에서 펼쳐진 성경이 사무엘상 28장인데, 이 챕터는 사울이 자신의 신분을 감추기 위해 변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건 우연이 아닌 의도된 배치로 보입니다. 제가 이 장면을 다시 찾아보고 나서 꽤 감탄했습니다.
그런데 영화 밖으로 나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프랭크의 회고록과 실제 기록 사이에는 상당한 격차가 존재합니다. 핵심적인 차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프랭크는 5년간 FBI를 피해 도주했다고 주장했지만, 실제 기록에 따르면 그 기간 중 대부분을 뉴욕 컴스톡 교도소에서 복역했으며 외부 활동은 길어야 3개월 수준이었습니다.
- 팬아메리칸 항공에서 위조한 수표 총액이 250만 달러라고 주장했지만, 팬아메리칸 측이 공식적으로 확인한 금액은 단 1장에 1,500달러 미만이었습니다.
- 루이지애나 변호사 시험 합격 후 주 검찰청에서 33건의 소송을 처리했다고 했지만, 시험을 봤다는 기록 자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 40년 넘게 FBI 자문으로 일했다고 주장했지만, FBI 측은 프랭크에 대해 단 한 번도 공식적으로 언급한 바가 없습니다.
FBI 공식 사이트에서도 프랭크 애버그네일 사건은 사소한 사건으로 분류되어 있고, 희대의 사기꾼이라는 수식어와는 꽤 거리가 있는 분류입니다. 저는 이 지점이 이 영화를 볼 때 가장 중요한 맥락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전설'이라 믿는 이야기가, 사실은 그 전설을 만든 사람이 가장 이익을 보는 구조였다는 것이죠.
결국 이 영화의 바탕이 된 자서전 자체가 상당 부분 과장된 이야기였다는 것입니다. 가디언(The Guardian)을 포함한 여러 매체들이 프랭크의 주장을 반박하는 기사를 냈고, 2021년에는 그의 과거를 폭로하는 책이 별도로 출판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화 기반 영화라는 프레임은 아직도 강력하게 살아 있습니다.
검증 이후에도 이 영화를 다시 보고 싶은 이유
프랭크 애버그네일의 실제 행적이 회고록보다 훨씬 소소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저는 오히려 이 영화가 더 솔직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왜냐면 스필버그 감독 스스로도 이 이야기를 '실화 재현'이 아닌 '한 소년의 심리'에 집중해서 풀어냈기 때문입니다. 실화의 과장 여부와 별개로, 영화가 담아낸 감정만큼은 진짜라고 느꼈습니다.
영화 속 허구의 FBI 요원 칼 핸래티와 프랭크의 관계, 실제 인물 조세프 시어를 모티브로 했다는 그 캐릭터가 프랭크를 집요하게 쫓으면서도 결국 그를 이해하게 되는 구조는 스필버그가 이 이야기에서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을 담고 있다고 봅니다. 인정받지 못한 소년이 세상을 향해 외친 방식이 하필 사기였을 뿐이라는 것. 그리고 인물의 변화 곡선이 영화 전체를 통해 가장 잘 그려진 부분입니다.
로튼 토마토(Rotten Tomatoes) 96%, IMDb 8.1이라는 평가 수치는 결국 이 영화가 사기꾼의 기록이 아닌, 사람 이야기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나온 숫자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정말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며칠 동안 자꾸 생각났습니다. 사기꾼의 이야기가 아니라, 아빠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아들의 이야기로 기억에 남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