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저는 이 영화가 극장에서 3천 명 남짓 보고 사라진 작품이라는 걸 몰랐습니다. 넷플릭스에서 한국 영화 톱10 2위로 올라오는 걸 보고 뭔가 싶어서 틀었는데, 다 보고 나서야 신인 감독 데뷔작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박용우 배우의 오랜만의 영화 복귀작이라는 말에 혹해서 평일 저녁에 거실 조명을 낮추고 봤는데, 기대했던 방향과는 꽤 다른 작품이었습니다.
극장 3천 명에서 넷플릭스 톱10, 넌센스의 역주행
2025년 11월 개봉한 이제희 감독의 데뷔작 넌센스는 극장에서는 조용히 스쳐 지나간 작품입니다. 3천 명 남짓이라는 관객 수는 웬만한 독립영화 수준에도 못 미치는 수치였습니다. 그런데 넷플릭스에 공개되자마자 하루 만에 한국 영화 톱10 2위에 오르며 역주행을 시작했습니다.
이런 현상을 두고 OTT 같은 스트리밍 플랫폼이 영화의 생애 주기를 완전히 바꿔놓고 있다는 말이 나옵니다. 극장 흥행 성적이 작품의 최종 평가가 되던 시대는 이미 지났어요. 국내 OTT 이용률이 꾸준히 늘면서, 극장 개봉 후 스트리밍 공개까지의 유예 기간도 점점 짧아지고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이 직접 추천평을 남겼다는 이야기도 이 영화가 다시 소환된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감독의 추천이라는 게 어느 정도 신뢰를 줄 수는 있지만, 저는 솔직히 그 말보다는 박용우 배우의 이름에 먼저 반응했습니다.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손해사정사 유나와 개그맨 순규, 두 인물의 팽팽한 밀당
이 영화를 어떻게 보면 재밌을지 묻는다면, 저는 두 인물의 텐션 차이를 따라가는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극의 구조 자체가 대척점에 서 있는 두 사람의 충돌과 변화를 중심으로 움직이거든요.
손해사정사 유나는 보험 사고 현장을 조사하고 보험금 지급 여부를 판단하는 직업입니다. 표정에 감정이라는 게 아예 없는 듯한 오아연 배우의 얼굴이, 화려한 오프닝 음악 하나 없이도 이 인물의 온도를 단번에 전달합니다. 제가 도입부 장면을 보면서 마음이 가라앉았던 건 그 건조한 얼굴 때문이었습니다. 뜨겁게 끓는 상대방에게 냉소적 태도를 일관하는 방식으로 캐릭터 전체를 각인시키는 연기는,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반면 잘 나가지 못하는 생활형 개그맨 순규는 상대의 텐션을 끌어올리는 인물입니다. 본 직업은 무명 개그맨이지만, 요양원이나 병원에서 웃음 치료 활동을 병행하는 인물이라 영화 곳곳에서 웃음과 유머로 타인의 감정을 끌어올리려는 장면들이 나옵니다. 그런데 박용우 배우가 이 인물을 연기하는 방식은 단순히 밝고 유쾌한 것이 아닙니다. 어딘가 의구스럽고 기묘한 분위기를 함께 품고 있어서, 보는 내내 이 사람이 진짜로 좋은 사람인지를 의심하게 만듭니다.
감독은 두 인물의 정체성을 시각적으로도 대비시킵니다. 화면 안에 배치되는 조명, 구도, 공간을 통해 인물의 내면을 표현하는 미장센 방식으로요. 텐션이 바닥을 치는 유나 주변에는 어둠이 깔리고, 카메라는 습관적으로 그녀의 발을 향해 아래로 내려앉습니다. 반대로 순규가 등장하는 장면은 밝습니다. 이 빛과 그림자의 교차가 극이 진행될수록 뒤바뀌는 지점, 그게 이 영화에서 제가 가장 흥미롭게 지켜본 부분이었습니다.
사기꾼인가, 아닌가, 그리고 믿음이란 무엇인가
넌센스의 핵심 질문은 결국 이겁니다. 강순규는 사기꾼인가, 아닌가? 그와 연관된 이들이 모두 보험금 수익자를 순규로 지정하고 사망했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유나는 조사에 파고듭니다. 여기서 영화가 단순한 범죄 미스터리가 아니라는 게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감독이 진짜로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것은 믿음의 구조처럼 보입니다. 맹신, 살기 위한 선택, 아니면 그냥 믿고 싶어서 믿는 것. 영화 안에서 무속 신앙에 의지하는 어머니와 그것을 막으려는 딸이 충돌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장면이 저에게는 꽤 오래 남았습니다. "만약이라는 게 있는 거잖아"라는 대사 하나가 믿음이라는 단어의 넓이를 그대로 보여주더군요.
순규와 유나 부친은 서로 다른 맥락에서 사기꾼으로 의심받는다는 점에서 포개어지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이 두 남성의 평행 구조는 영화가 단순히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데 그치지 않겠다는 의도를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 여러분은 어느 인물에게 더 감정이입하셨나요? 저는 의외로 유나 쪽이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확인할 수 있는 주요 서사 포인트를 정리해 보면 이렇습니다. 우선 물 위에 떠 있는 시체로 시작되는 오프닝부터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한 출발을 보이고, 보험금 수익자로 반복 등장하는 강순규라는 인물에 대한 의혹이 깔립니다. 거기에 손해사정사 유나와 개그맨 순규의 텐션 대비와 관계 변화가 극의 중심축으로 작동하고, 마지막으로 믿음의 문제를 여러 인물의 사례를 통해 다층적으로 다루는 철학적 시도까지 더해집니다.
영화 후반부에 감독은 어느 정도 윤곽을 제시합니다. 하지만 그 결말이 명확한 답이라기보다 관객에게 질문을 남기는 방식으로 마무리됩니다. 어떤 분들에게는 만족스러운 마무리가 될 수도 있고, 어떤 분들에게는 불완전한 마무리로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두 배우의 연기는 합격, 스릴러로 보면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중반부까지 '이제 좀 터질 때가 됐는데' 하면서 기다렸습니다. 그 폭발은 끝내 오지 않았습니다. 보험 사망 사건을 조사하는 손해사정사라는 설정만 들으면 누구나 장르적 긴장감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데, 이 영화는 그쪽 방향으로 달려가지 않습니다.
이야기가 관객을 다음 장면으로 끌어당기는 서사적 긴장감이라는 측면에서, 이 영화는 의도적으로 힘을 빼고 있습니다. 그 선택이 영화의 철학과 맞아 들어가는 부분도 있지만, 반대로 관객이 중간에 길을 잃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건데, 후반부에 인물의 동기와 사건의 인과관계가 지나치게 생략되어 있어서 '감독이 의도적으로 비워둔 건지, 그냥 설명이 부족한 건지' 구분이 안 되는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배우의 연기는 분명히 이 영화를 끝까지 보게 만드는 힘이 있었습니다. 박용우 배우는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에서도 인상적인 장면을 남겼던 배우이고, 오아연 배우는 저에게 낯선 얼굴은 아니었지만 이 영화에서 새롭게 보였습니다. 다 보고 나서 별 다섯 개 만점에 3점, 그 점수의 거의 전부가 두 배우의 연기에서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매년 스릴러 장르 영화는 꾸준히 나오지만, 그중에서 인물의 내면을 이 정도 깊이로 파고드는 작품은 드뭅니다. 장르적 쾌감보다 감정의 여운을 원하는 분들께는 분명히 맞는 작품입니다. 반대로 반전과 긴장감을 원하는 분들께는 솔직히 권하기 어렵습니다. 그 어긋남을 미리 알고 보시면 오히려 이 영화가 하려는 말이 더 잘 들릴 것 같습니다.
넌센스는 화려하지 않지만 묘하게 마음에 오래 남는 작품이었습니다. 극장에서 3천 명이 보고 사라진 영화가 넷플릭스에서 되살아난 건, 어쩌면 이 영화의 결이 스트리밍 환경에서 더 잘 전달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거실 소파에서, 불을 낮추고, 혼자 보는 분위기가 이 영화의 온도와 잘 맞습니다. 두 배우의 연기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볼 이유가 있는 작품이고, 한국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결의 미스터리를 경험해 보고 싶으신 분이라면 한 번쯤 시도해 볼 만한 영화입니다. 다시 정리하면 저에게 이 영화는 별점 5점 만점에 3점, 장르적 쾌감보다 감정의 여운을 원하는 분께만 추천드릴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여러분은 극장에서 묻혔다가 OTT에서 역주행한 영화 중에 인상 깊게 보셨던 작품이 있으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