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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 솔직 후기

중간계 리뷰 (서사 부재, AI 비주얼, 시기상조)

by 픽스패트 2026. 6. 11.

영화 중간계 공식 포스터 - 변요한, 김강우, 방효린 주연의 2025년 강윤성 감독 한국 판타지 영화, 이승과 저승 사이 중간계에 갇힌 인물들을 그린 국내 최초 AI 활용 장편 영화 메인 포스터

넷플릭스에서 변요한, 김강우 이름을 보고 망설임 없이 재생 버튼을 눌렀습니다. 국내 최초 생성형 AI를 활용한 장편 영화라는 타이틀도 꽤 매력적으로 들렸거든요. 결론부터 말하면, 20분도 안 돼서 핸드폰을 집어 들었습니다. 60분짜리 러닝타임이 그나마 다행이었던 영화였습니다.

서사 부재: 설정은 좋았는데 왜 이렇게 됐을까

이승과 저승 사이에 갇힌 사람들이 저승사자와 추격전을 벌인다는 설정, 처음 들었을 때는 솔직히 꽤 당겼습니다. 필리핀 카지노를 배경으로 한 범죄 누아르에 오컬트 요소를 접목한다는 구성은 강윤성 감독이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요. 범죄도시 1편을 만든 감독이잖아요.

그런데 막상 보니 내러티브(narrative), 그러니까 이야기를 끌고 가는 서사적 구조 자체가 없었습니다. 인물들이 왜 중간계에 갇혔는지, 그곳에서 빠져나오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납득 가능한 설명이 없었습니다. 캐릭터 모티베이션(character motivation), 즉 각 인물이 행동하는 동기도 따로 놀았습니다. 필리핀 카지노 운영자, 대사관 직원, 국정원 블랙 요원이라는 세 인물이 한 공간에 모였는데 왜 함께 움직이는지 끝까지 이해가 안 됐습니다.

~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B급 영화는 원래 개연성보다 재미가 우선이라는 시각도 분명히 있습니다. 저도 그 기준으로 봐주려 했습니다. 그런데 B급 영화도 자기만의 에너지가 있어야 하는데, 이 작품은 그 에너지조차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냥 인물들이 뛰다가 쓰러지고, 다시 뛰다가 끝났습니다. To be continued 자막이 올라가는 순간, 거실에서 혼자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60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을 감안해도 최소한의 기승전결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제 경험상 이렇게 서사가 없는 영화는 꽤 오랜만이었습니다. 씨네21 관객 별점 1점, 누적 관객수 2만 명이라는 숫자가 그냥 나온 게 아닙니다.

AI 비주얼: 기술 자랑이 오히려 독이 된 이유

생성형 AI(Generative AI)란 텍스트, 이미지, 영상 등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인공지능 기술을 뜻합니다. 최근 영화와 드라마 제작 현장에서도 CG 제작 비용과 시간을 줄이는 도구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 작품이 홍보 과정에서 "4일 걸리던 CG 작업을 한 시간 만에 해결했다"고 밝혔을 때, 저도 꽤 기대했던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화면에서 보이는 건 달랐습니다. 12지신을 형상화한 저승사자 크리처들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부터 이른바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 효과가 강하게 왔습니다. 언캐니 밸리란 인간이나 실사에 가깝게 보이려 할수록 오히려 어색함과 불쾌감이 커지는 현상을 뜻합니다. AI로 만든 호랑이, 돼지, 원숭이 형상의 저승사자들이 배우들의 실사 화면과 합성되는 순간, 두 이미지가 전혀 어우러지지 않고 붕 떠 보였습니다.

인스타그램 릴스나 유튜브 쇼츠를 넘기다 보면 가끔 기괴한 AI 생성 영상이 올라오는 걸 보신 적 있으실 겁니다. 15초짜리 그 영상 느낌이 극장용 장편 영화 화면에 그대로 나왔다고 보면 됩니다. 합성(compositing), 즉 실사 촬영 영상과 디지털 요소를 자연스럽게 합쳐내는 후반 작업의 완성도가 현저히 낮았습니다.

아래는 제가 이 영화의 AI 활용이 실패한 이유라고 본 주요 원인들입니다.

  1. 실사와 AI 생성 이미지 사이의 색감·질감 불일치로 화면 통일성이 무너진 점
  2. 크리처 움직임이 물리 법칙을 무시하는 수준으로 어색하게 처리된 점
  3. AI 생성 배경과 배우 간의 조명 방향이 맞지 않아 합성 티가 그대로 드러난 점
  4. 서사적 필요보다 기술 시연 자체가 목적처럼 보이는 장면 배치

~라는 의견도 있지만, 저는 이 기술 자체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AI를 도구로 잘 활용하면 충분히 신선한 시도가 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기술을 다루는 방식이었습니다. 실제로 할리우드에서도 AI 기반 VFX 보조 도구를 적극 도입하고 있고, 영화진흥위원회도 국내 영화 산업의 디지털 전환 관련 동향을 꾸준히 분석하고 있습니다. 기술이 먼저가 아니라 이야기가 먼저여야 한다는 기본을 이 영화는 놓쳤습니다.

시기상조: 이 타이틀이 앞으로 끼칠 영향이 더 걱정입니다

솔직히 보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배우들에 대한 미안함이었습니다. 변요한, 김강우는 연기력이 충분히 검증된 배우들입니다. 그런데 주어진 캐릭터와 대사가 너무 허술했습니다. 이무생 배우도 짧은 장면에서 존재감을 살리려는 노력이 보였는데, 각본이 받쳐주지 않았습니다. 배우들 잘못이 아니라는 게 보는 내내 안타까웠습니다.

~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국내 최초라는 타이틀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도전이라는 말도 틀리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새로운 시도를 응원하는 마음은 진심입니다. 안 가본 길을 먼저 걷는 건 분명히 멋진 일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 조심스러운 겁니다.

프레이밍 효과(Framing Effect)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같은 현상도 어떤 틀로 제시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인식이 완전히 달라지는 심리적 현상을 뜻합니다. 영화진흥위원회 연구 자료에서도 관객 인식이 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사례가 있습니다. '국내 최초 AI 장편 영화'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이 수준의 완성도에 붙여버리면, 앞으로 AI 기술을 진지하게 활용하려는 다른 창작자들에게까지 부정적 프레임이 씌워질 수 있습니다.

기생충이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받고 아카데미를 휩쓸었을 때 그 뿌듯함을 기억하시는 분들 많으실 겁니다. 한국 영화가 가진 저력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 저력이 새로운 기술과 만날 때는 기술보다 이야기가 먼저 단단해야 한다는 걸, 이 영화가 반면교사로 보여준 셈입니다. 제 경험상 이건 기술의 실패가 아니라 준비의 실패였습니다.

별 다섯 개 만점에 1점, 저는 이 영화를 주변에 추천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한국 영화가 AI 기술을 시도하지 말아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져서는 곤란합니다. 오히려 지금 필요한 건 기술 도입보다 앞서 탄탄한 서사를 먼저 갖추는 것, 그리고 기술을 이야기에 녹이는 방식에 대한 충분한 준비라고 봅니다. AI 영화가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다는 결론은 결국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 만드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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