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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영화 솔직 후기

신원 미상의 여자 리뷰 (누아르 분위기, 각본 실망, 원작 이식)

by 픽스패트 2026. 6. 12.

영화 신원 미상의 여자 공식 포스터 - 칸델라 페냐 주연의 넷플릭스 스페인 범죄 스릴러 영화, 기억을 잃은 여자가 권총을 든 메인 포스터
이미지 출처: 넷플릭스 《신원 미상의 여자》 공식 포스터

솔직히 말하면, 저는 분위기 좋은 포스터 하나에 완전히 낚였습니다. 바르셀로나 항구, 기억을 잃은 여자, 원작 베스트셀러 소설이라는 조합이 너무 그럴싸해서 공개 당일 바로 틀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도입부 20분이 이 영화의 전부였고, 나머지 시간은 점점 손이 핸드폰으로 가는 걸 막지 못했습니다. 넷플릭스 스페인 범죄 스릴러를 고르고 있다면, 제 경험이 조금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누아르 분위기는 진짜였다, 딱 거기까지

영화는 스페인 남부 알헤시라스에서 시작합니다. 담배를 맛있게 피우며 부패 경찰의 비리를 내부 감찰용 영상으로 촬영하는 여자 루시아의 등장은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화면 전체를 감도는 차갑고 음습한 색감, 그리고 바르셀로나 컨테이너 안에서 결박된 채 발견되는 신원 미상의 여자 장면까지, 도입부만큼은 제가 기대했던 스페인 누아르(noir)의 결을 정확하게 짚었습니다. 누아르란 어둠을 뜻하는 프랑스어에서 유래한 장르 개념으로, 도덕적 모호함과 음울한 분위기를 근간으로 하는 범죄 서사를 뜻합니다.

주연을 맡은 칸델라 페냐의 연기도 처음부터 믿음직스러웠습니다. 오빠를 최근에 잃은 트라우마를 안고 복귀하는 형사 아나 역할인데, 감정을 절제하면서도 눈빛 하나로 집요함을 전달하는 방식이 설득력 있었습니다. 자세를 고쳐 앉고 화면을 응시했던 건 사실입니다. 문제는 그 집중이 오래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영화 속 공간도 공들여 설계된 느낌이었습니다. 카탈루냐(Cataluña) 지역, 즉 바르셀로나가 속한 스페인 자치 지방의 지역 경찰과 국가 경찰 사이의 관할권 긴장감, 저소득층 이주 노동자들이 밀집한 골목의 질감까지, 공간적 배경만큼은 제법 풍성했습니다. 그런데 그 배경이 서사의 긴장감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그냥 배경으로 머물러버린 것이 아쉬웠습니다.

각본 실망, 이건 구조적인 문제였다

중반부부터 제 손이 핸드폰으로 갔습니다. 이유가 뭔지 생각해보니, 스릴러가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원칙인 긴장 고조(escalation), 그러니까 사건이 진행될수록 위험과 긴장이 점점 조여드는 구조가 이 영화에 없었습니다. 중반 내내 비슷한 호흡의 장면이 반복되었고, 반전이라고 제시되는 순간마다 "아, 역시 이쪽으로 가는구나" 싶은 예상의 연속이었습니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여자가 알고 보니 인신매매 조직의 비트코인 지갑 비밀번호를 머릿속에 기억하고 있는 인물이라는 설정은 흥미롭습니다. 비트코인 지갑(Bitcoin wallet)이란 암호화폐 자산에 접근하기 위한 고유 키 정보를 저장하는 디지털 수단으로, 비밀번호를 잃으면 자산 전체를 회수할 수 없습니다. 그 설정 자체는 나쁘지 않았는데, 그 설정을 활용하는 방식이 너무 안일했습니다. 인신매매 조직의 실체나 그 배후에 대한 묘사가 거의 없이 사건이 마무리되어버렸습니다.

가장 납득이 안 됐던 장면은 범인 체포 장면이었습니다. 무장 부하를 여럿 거느린 조직의 수장을 잡으러 가는데, 경찰 두 명과 피해자 당사자, 이렇게 세 명이 갑니다. 그리고 예상대로 놓칩니다. 인원 부족에 대한 극 중 서장의 변명이 있기는 한데, 그게 시청자 입장에서는 제작 예산 부족이 그대로 화면에 노출된 것처럼 읽혔습니다. 실제로 악당 측 인물도 두세 명이 전부였고, 그 허술함이 긴장감을 완전히 무너뜨렸습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반전 구조가 예측 가능한 클리셰(cliché)의 반복이었습니다. 클리셰란 지나치게 자주 사용되어 신선함을 잃은 표현이나 서사 공식을 뜻합니다.
  2. 인신매매 조직의 배경과 상부 구조가 전혀 드러나지 않고 미적지근하게 마무리되었습니다.
  3. 액션 장면의 타격감과 역동성이 스릴러 장르 기준에 한참 못 미쳤습니다.
  4. 중반부 긴장 고조 없이 유사한 호흡이 반복되어 몰입이 풀렸습니다.

영화 장르 비평 기준으로 보면, 이 작품은 미장센(mise-en-scène), 즉 화면 안에 배치되는 모든 시각적 요소의 구성과 연출은 합격이었지만, 서사 구조와 각본 완성도에서 낙제점을 받은 경우입니다. 좋은 그릇에 음식을 제대로 담지 못한 느낌이었습니다.

원작 이식 실패, 소설이 잘 팔렸다고 영화도 되는 건 아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검색을 좀 해봤는데, 원작 소설은 스페인 작가와 프랑스 작가가 함께 집필한 160쪽 분량의 단편 소설입니다. 두 나라를 오가는 추격전과 교차하는 배경이 원작의 긴장감을 만드는 핵심 구조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영화는 그 이야기를 스페인 안에서만 해결하려다 보니, 인물들의 역할이 뒤섞이고 서사의 밀도가 얇아진 것입니다.

원작에서 영화로 옮기는 과정을 각색(adaptation)이라고 합니다. 각색이란 특정 매체의 원작 콘텐츠를 다른 매체 형식에 맞게 재구성하는 창작 과정입니다. 각색이 잘 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의 차이는, 원작의 핵심 긴장 구조를 새로운 매체 안에서도 살려냈느냐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한국 영화 신과함께도 원작 웹툰에서 특정 캐릭터를 삭제하고 다른 인물에게 그 역할을 이식했지만, 서사의 감정 흐름 자체는 유지되었습니다. 이 영화는 그 이식 자체가 잘 되지 않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 재미있는 발견은 있었습니다. 영화 초반에 경찰 서장이 커피를 주문하면서 코르타도(cortado)를 찾는 장면이 나옵니다. 코르타도란 에스프레소(espresso)에 동량의 우유를 섞어 만드는 스페인식 커피 음료로, 에스프레소 원액의 쓴맛을 우유로 부드럽게 잘라낸다는 의미에서 이름이 붙었습니다. 스페인에서는 점심 이후에도 즐겨 마시는 일상적인 음료라고 합니다. 이런 디테일이 더 많았다면 영화 자체가 훨씬 풍성했을 텐데, 그 아쉬움이 더 진하게 남았습니다. 스페인 커피 문화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스페인 관광청 공식 사이트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넷플릭스 공개 영화 순위나 시청 동향은 넷플릭스 공식 Top 10 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결국 별 다섯 개 만점에 2점, 분위기에 낚여 끝까지 봤지만 후회한 작품이었습니다. 이후로는 스페인 영화를 고를 때 포스터와 제목만 보고 바로 누르지 않기로 했습니다. 원작이 베스트셀러라는 사실이 영화의 완성도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 영화가 다시 한번 확인시켜줬습니다. 누아르 스릴러를 찾고 있다면, 이 영화 대신 각본이 탄탄한 다른 선택지를 먼저 알아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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