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넷플릭스에서 액션 영화를 찾다 지쳤다면, 반대로 질문을 던져봐야 할 때입니다. 죽지 않는다는 게 과연 축복일까요, 아니면 저주일까요? 그 질문 하나로 2시간을 붙잡아 두는 영화가 있습니다. 샤를리즈 테론 주연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올드 가드'입니다. 저는 주말 밤에 별 기대 없이 틀었다가, 도끼 든 여전사가 화면 가득 등장하는 순간부터 자세를 고쳐 앉았습니다.
불멸 설정, 이 영화가 다른 히어로물과 결이 다른 이유
슈퍼히어로 장르에 지쳐있는 분이라면 한 번쯤 이런 고민을 해보셨을 겁니다. "또 기원 이야기인가?" 올드 가드는 그 공식에서 의도적으로 비껴섭니다. 이미 수천 년을 살아온 불멸자들이 주인공이라, 능력을 얻는 장면 따위는 없습니다. 그 대신 영화는 처음부터 이들이 얼마나 오래, 그리고 얼마나 지쳐서 싸워왔는지에 집중합니다.
팀의 리더 앤디는 수천 년을 전장에서 살아남은 전사입니다. 동료 조와 니키는 각각 십자군 전쟁 시대에 처음 만나 그 이후로 함께 싸워온 캐릭터입니다. 제가 인상 깊었던 부분은 이 설정이 단순한 소품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조와 니키가 처음 만났을 때 서로를 죽이고 죽으며 적으로 싸웠다는 회상 장면은, 불멸이라는 설정이 로맨스에까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보여주는 꽤 영리한 장치였습니다.
여기서 영화가 주목한 개념이 바로 재생입니다. 재생이란 치명상을 입어도 세포가 스스로 복구되며 되살아나는 능력을 뜻합니다. 올드 가드에서는 이 능력이 영구적이지 않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앤디가 중반부 이후 상처가 아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장면에서, 저는 등줄기가 서늘했습니다. '아, 이 사람도 결국 유한해질 수 있구나.' 그 순간 앤디라는 캐릭터가 갑자기 훨씬 인간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새로운 불멸자 나일의 각성 과정도 이 맥락에서 중요합니다. 미 해병대원으로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된 나일이 치명상을 입고도 멀쩡하게 살아나는 장면은, 영화가 불멸이라는 설정을 얼마나 현실적인 군사 맥락에 붙여넣으려 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영화는 동명의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하는데, 원작의 밀리터리적 설정이 영화 전반에 꽤 충실히 반영된 편입니다.
샤를리즈 테론의 액션, 그리고 영화가 놓친 것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샤를리즈 테론 때문에 이 영화를 틀었습니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에서 퓨리오사로, 아토믹 블론드에서 CIA 요원 로레인 브로튼으로 이미 충분히 검증된 배우입니다. 이 두 작품에서 그녀가 보여준 것은 단순한 액션 연기가 아니라, 몸 전체로 캐릭터의 무게를 표현하는 퍼포먼스였습니다. 올드 가드에서도 그 내공은 여전했습니다.
특히 제가 감탄한 장면은 좁은 공간에서 도끼를 활용해 다수의 적을 제압하는 시퀀스였습니다. 좁고 제한된 공간에서의 근거리 전투 방식이 안무처럼 정교하게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군더더기 없이 효율적인 동작 하나하나가, 수천 년을 싸워온 전사라는 설정을 몸으로 증명해 주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영화 전체를 두고 보면, 이야기의 완성도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설정이 좋은 영화들이 공통적으로 빠지는 함정이 있는데, 빌런의 평면성이 바로 그겁니다. 올드 가드의 최종 보스 메릭은 불멸자의 세포를 연구해 의학적 이익을 얻으려는 제약회사 CEO입니다. 생명과학 기술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 하는 생명윤리 문제를 건드리는 설정인데, 영화는 그 깊이를 제대로 파고들지 못합니다. 메릭의 동기가 너무 단순해서 최종 대결의 카타르시스가 절반쯤 날아간 느낌이었습니다.
이 영화가 잘한 것과 아쉬운 것을 정리해 보면 이렇습니다. 우선 샤를리즈 테론의 근접 전투 액션은 현재 할리우드 여성 액션 배우 중에서도 최상위권이라고 봐도 손색이 없고, 불멸자들의 심리적 피로감과 권태를 캐릭터 서사에 녹인 방식도 기존 슈퍼히어로 장르와 뚜렷이 차별화됩니다. 반면 빌런 메릭의 동기와 행동 논리가 지나치게 단순해서 후반부 긴장감이 예상보다 빨리 식어버린 점은 아쉬웠고, 500년 동안 바닷속에 갇혀 부활을 반복해온 불멸자 퀸의 이야기도 충분히 전개되지 못한 채 복선으로만 남았습니다.
거실 소파에 누워 보다가 후반부에 핸드폰을 들여다본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끝까지 끈 적은 없습니다. 이야기가 어떻게 마무리될지 궁금한 마음이 계속 남아있었거든요. 별 다섯 개 만점에 3점짜리 영화는 그런 영화입니다. 끝까지 보게 만드는 힘은 있는데, 끝나고 나서 뭔가 더 볼 걸 그랬다는 아쉬움은 남지 않는.
속편 전망, 올드 가드 2를 기다리는 이유가 생겼습니다
엔딩 이후 속편에 대한 기대가 제법 생겼습니다. 1편이 열어둔 복선들이 2편에서 어떻게 풀릴지, 그리고 새로 합류하는 캐릭터가 이야기를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갈지가 궁금합니다. 영화의 엔딩에서 500년 동안 바닷속에 갇혀 있던 불멸자 퀸이 마침내 수면 위로 올라오는 장면은, 1편보다 훨씬 넓어질 세계관을 예고하는 연출이었습니다.
캐스팅 면에서도 관심을 끄는 부분이 있습니다. 샤를리즈 테론이 제작에도 참여하고 있는 이 시리즈에 킬 빌로 유명한 우마 서먼이 합류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고 있습니다. 두 배우의 조합이 실제로 이뤄진다면, 올드 가드 2는 1편과는 결이 다른 캐스팅만으로도 볼 이유가 생기는 작품이 됩니다. 다만 속편 개봉 일정이나 최종 캐스팅 확정 여부는 제 글 작성 시점 기준으로 아직 유동적이니, 최신 정보는 넷플릭스 공식 채널에서 확인하시는 편이 정확합니다.
하나의 세계관을 공유하며 여러 편으로 이어지는 시리즈로 올드 가드가 성장할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불멸자라는 설정 자체가 이야기를 역사의 어느 시대에든 끌어다 놓을 수 있는 유연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래픽 노블 원작자인 그레그 루카는 시리즈 확장을 염두에 두고 세계관을 설계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제가 직접 1편을 보면서 느낀 것도 그겁니다. 이 이야기는 2시간짜리 영화 한 편으로 담기엔 배경이 너무 넓습니다.
원작 만화의 팬덤이 속편을 기다리고 있다는 점, 그리고 1편이 공개 첫 주에 넷플릭스 전 세계 시청 기록을 갱신했다는 점은 제작사 입장에서도 무시하기 어려운 숫자입니다. 올드 가드는 공개 4주 만에 넷플릭스에서 7,800만 가구가 시청한 것으로 집계되었습니다. 이 수치는 당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중 역대 최고 수준이었습니다.
결국 올드 가드는 완성도 높은 걸작이라기보다, 좋은 재료를 가진 채 절반쯤만 요리된 영화에 가깝습니다. 불멸이라는 설정의 잠재력을 충분히 소화해내지 못한 아쉬움은 있지만, 샤를리즈 테론의 액션 하나만으로도 주말 밤 두 시간을 쓸 이유는 충분합니다. 아직 안 보셨다면 큰 기대 없이 가볍게 틀어보시고, 이미 보셨다면 2편이 1편의 한계를 어떻게 넘어설지 지켜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죽지 않는 능력이 생긴다면, 그것을 축복이라고 느끼실까요 아니면 저주라고 느끼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