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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나 솔직 후기 (아나 데 아르마스, 킬링타임용으로는 충분한 액션)

by 픽스패트 2026. 3. 20.

존 윅 유니버스 영화 발레리나 포스터 이미지

저는 존윅 시리즈의 오랜 팬입니다. 키아누 리브스가 연필 한 자루로 사람 세 명을 처리하는 그 미친 액션을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한데, 그 세계관에서 여성 암살자 이야기가 나온다고 하니 호기심이 안 생길 수가 없었습니다. 발레리나를 본 솔직한 첫 감상부터 말씀드리면, 액션은 분명 볼 만했지만 존윅 1편을 처음 봤을 때의 그 강렬한 인상까지는 가지 못했습니다. 한마디로 "존윅 팬 서비스로는 괜찮은 킬링타임용 액션 영화"였습니다.

존윅 시리즈가 워낙 명작이다 보니 스핀오프에 기대치가 높아진 게 사실이고, 그 기준에서 보면 발레리나는 잘 만들었지만 "본가만큼은 아닌" 작품이었어요. 그래도 액션 하나만 놓고 보면 충분히 즐길 만한 부분이 있어서, 가볍게 한 편 보고 싶으신 분들에게는 추천할 만한 영화입니다.

이브의 액션은 존윅과 다릅니다

발레리나는 존윅 시리즈와 세계관을 공유하면서도 완전히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보통 스핀오프 작품들은 원작에 등장했던 인기 캐릭터를 활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 영화는 루스카 로마에서 훈련받은 새로운 암살자 이브를 주인공으로 내세웠습니다. 아나 데 아르마스가 연기한 이브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고 복수를 결심하게 되는 전형적인 서사를 따르지만, 그녀가 구사하는 액션은 존윅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가장 핵심적인 차이는 훈련 과정에서 교관이 이브에게 던진 조언에서 비롯됩니다. "여자처럼 싸우라"는 이 말은 신체적 한계를 인정하고 영리하게 상황을 활용하라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이브는 정면 승부보다는 상대를 속이고 급소를 공략하는 전략을 구사합니다. 이는 존윅이 보여준 장인 정신의 액션과 대비되는 지점입니다. 존윅이 한 분야를 파고든 장인이라면, 이브는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을 무기로 활용하는 뷔페 레스토랑과 같습니다. 칼, 도끼, 수류탄, 화염방사기, 심지어 스케이트까지 다양한 도구를 무기로 사용하는 모습은 여성 암살자 캐릭터만의 독특한 전투 스타일을 완성합니다. 이러한 액션 디자인은 발레라는 우아한 예술과 청부살인의 잔혹함을 병치시키며, 폭력을 우아함으로 승화시키는 독특한 미학을 창조해 냅니다.

30분 후부터 진짜 시작입니다

언더월드로 데뷔해 다이하드 4.0으로 절정을 달렸던 렌 와이즈먼 감독은 토탈 리콜 이후 한동안 영화계를 떠나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영화로 복귀한 그는 발레리나에서 자신의 장기인 액션 연출에 혼신의 노력을 쏟아부었습니다. 특히 공간의 구조와 특성을 기가 막히게 활용하는 능력은 이 영화의 백미입니다. 좁은 석조 건물에서 총기 대신 수류탄으로 다수를 상대하는 장면은 공간의 물리적 특성을 전략적으로 이용한 영리한 액션 설계입니다.
약 30분이 지난 시점부터 펼쳐지는 액션 시퀀스는 확실히 볼만한 수준입니다. 카메라 워킹과 편집은 무용수의 리듬에 맞춰 긴박하면서도 리드미컬하게 전개되어 시각적 쾌감을 극대화합니다. 특히 화염방사기와 소방호스를 활용한 대결 장면은 자칫 유치해 보일 수 있는 소재를 실제 전투 무기처럼 연출해 낸 감독의 역량을 보여줍니다. 렌 와이즈먼은 언더월드에서 보여줬던 미술과 액션에 대한 감각을 다시 한번 증명하며, 할리우드 액션의 노하우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줍니다. 자본과 연출 노하우가 결합되었을 때 만들어지는 액션의 밀도가 어느 정도인지 체감할 수 있는 장면들이었습니다. 긴 화염방사기 씬이나 여러 무기를 연속적으로 활용하는 전투 장면들은, 적어도 액션 디자인 측면에서는 존윅 시리즈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을 만큼 신경을 썼다는 인상을 줍니다.

이야기는 아쉬웠습니다

아나 데 아르마스는 노타임 투 다이에서 보여준 활약을 넘어 발레리나에서 본격적인 액션 배우로서의 면모를 과시합니다. 혹독한 훈련을 통해 완벽한 암살자로 길러진 이브의 정체성 혼란은 단순한 복수극에 심리적 깊이를 더합니다. 차가운 복수의 이면에 존재하는 인간적 유약함과 예술에 대한 갈망은 관객이 캐릭터에 정서적으로 몰입하게 만드는 중요한 장치입니다. 이는 단순히 죽이고 부수는 액션을 넘어 심리 스릴러적 요소를 가미한 시도로 평가됩니다.
하지만 서사적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브의 어린 시절부터 보여주는 지나치게 구식이고 선형적인 구조는 아나 데 아르마스가 등장하기까지 무려 15분 이상을 소비하게 만듭니다. 이 진부한 서사를 감내해야 본격적인 액션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한 약점입니다. 더욱이 이브의 복수 타겟이 되는 조직에 대한 설명이 부족합니다. 가브리엘이 연기한 총장이 왜 집착하는지, 이브의 아버지가 왜 조직을 떠나려 했는지에 대한 명확한 설명 없이 서사가 전개됩니다. 이런 설정들을 제대로 풀어냈다면 더욱 탄탄한 구성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30분 이후 액션이 본격적으로 펼쳐지면 그 전까지의 지루함이 어느 정도는 보상됩니다. 최수영과 정두홍의 등장은 솔직히 국내 마케팅용이라는 느낌이 강했지만, 큰 흠은 아니었습니다. 존윅 시리즈의 익숙한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컨티넨탈 호텔 같은 배경이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부분은, 저처럼 존윅 팬으로 들어온 사람에게는 분명 반가운 요소였습니다.

정리하면 발레리나는 액션은 볼 만했지만 서사의 아쉬움이 끝까지 따라붙는 작품이었습니다. 저는 이 영화에 별점 5점 만점에 3점을 드리고 싶습니다. 액션 디자인과 공간 활용은 분명 칭찬할 만했지만, 초반 15분의 진부한 도입부와 조직에 대한 설명 부족은 끝까지 마음에 걸렸습니다. 무엇보다 존윅 시리즈를 너무 사랑하는 팬으로서, 본가의 그 강렬한 인상을 떠올리면 3점 이상을 주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가볍게 액션 한 편 즐기고 싶으신 분이라면, 그리고 존윅 세계관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충분히 한 번쯤 보실 만합니다. 다만 존윅 1편 같은 명작을 기대하신다면 그 기대치는 한 칸 낮추고 보시길 권합니다. 여러분은 좋아하는 시리즈의 스핀오프가 본가에 미치지 못해서 아쉬웠던 경험이 있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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